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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오래된 친구와 상동호수공원에서 보낸 저녁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상동역에서 저녁 약속을 잡았다. 학생 때는 자주 만났지만 서로 사는 곳과 일하는 시간이 달라진 뒤로는 얼굴을 보는 일도 큰 일정이 됐다. 이날만큼은 다음 장소를 촘촘하게 정하지 않고, 밥을 먹은 뒤 날씨가 괜찮으면 공원을 걷기로 했다.

 

해가 내려앉은 호숫가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상동호수공원으로 향했다. 낮의 더위가 남아 있었지만 나무 그늘 아래는 제법 선선했다. 산책로에는 운동하는 사람과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주민들이 끊이지 않았고, 호수 건너 아파트 창문에는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해 질 무렵 상동호수공원의 산책로와 호숫가 풍경
해 질 무렵 상동호수공원의 산책로와 호숫가 풍경

 

친구가 도착한 뒤에도 바로 식당으로 가지 않고 공원 가장자리를 반 바퀴 걸었다. 예전에 함께 다니던 학교 앞 가게 이야기부터 최근 배우기 시작한 취미까지 주제가 자주 바뀌었다. 오랜만의 대화인데도 설명이 길게 필요하지 않아 편했다.

 

버섯전골과 감자전이 놓인 저녁상

저녁에는 여러 종류의 버섯이 들어간 전골과 감자전을 골랐다. 국물이 끓기 시작하자 버섯 향이 진해졌고, 감자전은 가장자리부터 바삭하게 식어 갔다. 뜨거운 국물 때문에 말이 자꾸 끊겼지만 누구도 서둘러 다음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여러 버섯이 담긴 전골과 노릇하게 구운 감자전
여러 버섯이 담긴 전골과 노릇하게 구운 감자전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공원 쪽보다 상가 거리가 더 밝았다. 창문에 붙은 포스터와 작은 입간판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고, 문을 닫는 가게 앞에서는 직원들이 의자를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노래 대신 조용한 찻집을 고른 이유

예전 같으면 식사 후 자연스럽게 부천노래방을 검색했겠지만, 친구가 감기로 목소리가 잠겨 있어 이번에는 포기했다. 대신 오래 이야기할 수 있는 찻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가 아쉽기보다 그날 컨디션에 맞춰 선택을 바꾼 일이 오히려 편안했다.

검색해 둔 곳까지는 걸어서 십 분 정도였다. 이동하는 동안 호수 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식당 냄새를 금방 지워 주었다. 친구는 다음에는 목이 괜찮을 때 예전에 부르던 노래 목록을 다시 꺼내 보자고 했다.

 

달지 않은 대추차와 다음 약속

찻집에서는 설탕 맛이 강하지 않은 대추차를 주문했다. 잔이 따뜻해 두 손으로 감싸고 있으니 걸으면서 조금 차가워진 손끝이 금세 풀렸다. 창밖 나뭇잎 사이로 공원 조명이 보였고, 매장 안에서는 말소리를 낮추지 않아도 대화가 또렷하게 들렸다.

 

조용한 찻집 창가에 놓인 따뜻한 대추차
조용한 찻집 창가에 놓인 따뜻한 대추차

 

우리는 헤어지기 전에 다음 달 주말 하나를 미리 비워 두었다. 정확한 장소는 나중에 정하더라도 날짜부터 잡아 놓으면 또 몇 달이 지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상동역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호수 표면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산책로 조명만으로도 길은 충분히 밝았다. 오래된 친구와의 만남은 새로운 장소보다 익숙한 이야기를 천천히 이어갈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느낀 저녁이었다.

 

헤어진 뒤에도 이어진 대화

전철을 탄 뒤 친구에게서 공원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이 도착했다. 나는 호수와 나무를 주로 찍었는데 친구 사진에는 전골이 끓기 직전의 식탁과 찻잔을 든 내 손이 담겨 있었다. 같은 시간을 보내도 한 사람은 풍경을, 다른 사람은 함께 있던 사람을 더 많이 기록한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대화는 잠깐 더 이어졌다. 다음 만남에는 오래된 사진을 가져오자는 이야기와, 날씨가 좋으면 공원 반대편 길을 걸어 보자는 약속을 메시지로 남겼다. 거창한 계획은 아니지만 바로 정해 둔 작은 약속 덕분에 이날 만남이 한 번의 추억으로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