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내내 실내에 있었더니 퇴근할 무렵에는 바깥 공기가 유난히 그리웠다. 동탄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연락했더니 저녁을 먹고 호수공원이나 걷자는 답이 왔다. 목적지를 여러 군데 정하지 않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다리가 아프면 쉬기로 했다. 약속이 단순하니 준비할 것도 많지 않았다.
반듯한 건물 사이에서 만난 저녁빛
상가가 모인 구역을 빠져나오자 시야가 갑자기 넓어졌다. 유리 건물에 걸린 노을은 주황색과 분홍색 사이를 오갔고, 호수 쪽에서는 자전거 벨과 아이들 웃음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신도시라는 말에서 떠올렸던 단정한 풍경보다 생활감이 훨씬 많았다.

벤치에 잠시 앉아 물 위로 길게 늘어진 빛을 바라봤다. 조깅하는 사람, 유모차를 미는 가족, 이어폰을 낀 채 천천히 걷는 사람이 같은 길을 서로 다른 속도로 지나갔다. 우리도 서둘러 한 바퀴를 채우기보다 눈에 들어오는 방향으로 걸었다.
함박스테이크 앞에서 느려진 대화
저녁은 구운 채소가 곁들여진 함박스테이크로 정했다. 접시가 나오자 소스 끓는 소리가 작게 들렸고, 잘 구워진 채소에서는 단맛이 났다. 친구는 최근 맡은 업무 이야기를 하다가도 음식이 식을까 봐 말을 멈췄다. 덕분에 대화가 한꺼번에 쏟아지지 않고 식사 속도에 맞춰 천천히 이어졌다.

상가 안내판에서 지나친 한 문구
화장실 위치를 확인하려고 상가 안내판을 들여다보다가 업종 목록 사이에서 동탄호빠라는 문구를 봤다. 우리가 찾던 정보와는 관계가 없어 위치만 확인한 뒤 곧바로 공원 쪽으로 나왔다. 친구는 안내판보다 맞은편 수변 데크가 덜 붐빈다며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두 번째 산책은 처음보다 조용했다. 말을 쉬는 동안 물결이 난간 아래에 닿는 소리와 멀리서 버스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많이 걸었다는 느낌보다는 하루 종일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 풀렸다는 감각이 먼저 왔다.
바닐라 향이 은은했던 마지막 휴식
돌아가기 전에는 조명이 밝지 않은 카페에 들어가 무가당 바닐라티를 주문했다. 단맛이 강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향만 부드럽게 남아 늦은 시간에 마시기 괜찮았다. 창밖으로는 운동을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주차장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친구와 다음 약속을 바로 정하지는 않았다. 대신 오늘처럼 일정 하나만 정해 두고 만나는 방식이 의외로 편했다는 데 의견이 같았다. 동탄역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휴대폰 걸음 수가 평소보다 높게 찍혀 있었다. 특별한 행사는 없었지만 저녁빛, 따뜻한 식사, 호숫가의 바람이 순서대로 남은 하루였다.
호수에서 남은 장면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사진을 다시 보니 노을을 크게 담은 사진보다 난간 옆에 세워진 자전거와 물가의 작은 풀을 찍은 장면이 더 마음에 들었다. 눈앞에서는 평범했던 요소가 화면 안에서는 그날의 온도와 바람을 떠올리게 했다. 친구에게 사진을 보내자 자신은 같은 시간에 반대편 분수를 찍고 있었다며 다른 각도의 사진을 보내 왔다.
다음에 동탄을 찾는다면 새로운 명소를 추가하기보다 호수공원의 낮 풍경을 보고 싶다. 저녁에는 조명과 사람의 움직임이 중심이었다면, 낮에는 물빛과 건물의 윤곽이 더 또렷할 것 같다. 같은 길도 시간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가 다음 방문의 이유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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